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삶, 인생

나에게로 쓰는 편지 / 전상훈

by LeeT. 2023. 4. 19.

2023.3.18.

무얼 더 바라겠는가
 
아파서 병원에 누워 있지 않고
아침 먹고 나면
다녀오겠습니다, 인사하고 나가고
저녁때 조금은 지친 얼굴로 돌아오지만
다녀왔습니다, 공손히 눈 맞추고
밤이 오면 저마다의 꿈속에서
발 쭈욱 뻗고 잠들면 되지
 
가시밭 수렁길에서
사람 노릇하며 산다는 게
참으로 눈물 나는 세상,
일확천금할 재주는 못 가졌어도
도둑질, 거짓말하지 않고
제 손으로 제 밥벌이할 정도 되었다면
그 아들, 그 딸 모두 장하고 또 장하거늘
 
한평생 매달려 피땀으로 지어보지만
뜻대로 되지 않는 게 자식 농사,
부모의 높은 기대 잘 받들어
입신양명의 꽃가마 타는 이도 있긴 하지만
범을 보고 개 그리고
봉을 보고 닭 그리다 마는 게
우리네 인생인 것을

실패와 낙오의 쓴 잔 거푸 마시고
어머니 아버지, 이번 한 번만 도와주십시오
우는 얼굴로 찾아와
손 벌리지 않는 것만 해도 너무 고맙고
여기 경찰섭니다, 라는 전화
한밤중에 받지 않아도 될 정도라면
두 손 모아 엎드려 감사할 일 아니던가
 
아, 겉 낳았지, 속 낳았던가
자식 인생은 자식의 것
즈그는 즈그대로 즈그 인생 살고,
부모 인생은 부모의 것
우리는 우리대로 우리 인생 살면서
부디 행복하고 건강하기만을
간절한 마음으로 빌어주면 그뿐
 
예서 무얼 더 바라며
발 동동 굴러야 쓰겠는가
 
- 전상훈 / 나에게로 쓰는 편지 -

 

Oasis - Stand By Me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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