샛바람 불어 지면은
온통 만남의 이야기다.
연분홍 처녀들의 다소곳한 기다림과
물 건너서 달려온 초록 사내들의 다정한 눈길.
마파람 불어 지면은
온통 사랑의 이야기다.
격정에 휘몰아치던 그 날 밤의 폭우와
땀에 흠뻑 젖은 숲들의 가쁜 숨결.
하늬바람 불어 지면은
온통 이별의 이야기다.
잿빛 노을 앞에서 쓸쓸히 손 흔들며
돌아서는 그의 빈 어깨.
된바람 불어 지면은
이제 온통 그리움의 이야기다.
백지 위에 나뒹구는 연필심처럼
눈밭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의 부러진 나목.
바람이 분다.
운명의 책장들을 넘긴다.
다시 살아야겠다.
- 오세영 / 책장을 넘기며 -
Rachel Rachel - Time
'삶, 인생' 카테고리의 다른 글
뿌리가 없으면 꽃이 피지 못한다 / 셰익스피어 (0) | 2023.11.19 |
---|---|
고마워요, 사랑해요 / 도지현 (0) | 2023.11.19 |
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/ 김재식 (0) | 2023.11.19 |
얼굴 반찬 / 공광규 (0) | 2023.11.18 |
알았으면 좋겠습니다 / 이선정 (1) | 2023.11.18 |
댓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