기다린다는 것은
잠시 허망에 빠지는 일이다.
그가 오리라는 확신이 차츰 허물어지며
통로 저쪽 문밖까지 나가 선 나의 간절함이
차츰 아픔으로 기울어진다.
쓸쓸한 음악이 흐르는 찻집,
석양이 얼비치던 창도 커피색이다.
오리라는 기약이 있었던가
잠시 나의 기억을 의심해 본다.
시간은 굴삭기처럼 가슴을 파고들고
점점 내 앞자리의 빈 공간이 더 커진다.
쓴 커피를 다시 한 잔 시키고
부질없이 성냥개비를 분질러 숫자를 세고
지나간 날들이 다 헐릴 때까지
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기다린다는 것은
숨통을 끊는 일이다.
때로는 기쁨으로 가슴 설레다가
차츰 커피잔이 식듯
아픔과 쓰라림과 절망으로 이어지는
형벌 같은 것.
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절절함 속에서
모질게도 단련되고 길들여지는지.
오늘도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
기다림을 놓아둔 채 찻집을 나선다.
저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
꺼질 듯 꺼질 듯한 사랑을
애틋하게, 애틋하게 바라보면서.
- 김종묵 / 기다림 -
시인과촌장 - 가시나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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