나 죽거든 어둡고 칙칙한 땅에는 묻지 마소.
한 번도 만난 적 없는, 절대 어둠과
생소하기 짝이 없는 퀴퀴한 내음에
죽어서도 머리 뱅뱅 굴려야 하는 내가 싫소
그렇다고 나 죽거든 물에는 마구 뿌리지 마소
살아서 빛나던 내 이마와
더 빛나던 웃음으로
순진한 물고기 가슴 설레게 하고 싶진 않소
죽음으로 맞바꾼 이 자유를
물고기 밥으로 줄 수 없기에.
그래, 나 죽거든 그저 바람에 풀어놓아 주소
살아서 다 풀어놓지 못한 내 방랑벽
바람과 진한 통정을 한 후
어느덧 한 몸이 되어
자책도 회한도 한 올 입지 않고
바람만큼 자유로이 떠돌고 싶소.
혹, 한 줌 연민이 그대 발목 잡거들랑
도리도리, 서너 번으로 기꺼이 나를 놓아주소
내 미치도록 좋아하던 한계령이나 미시령쯤에서
들개 목줄을 풀어주듯
자랑스럽게 그리, 나를 보내주소
그리고 돌아오는 길에
보름달 같은 반사경 사이로
설핏 낮달이 찾아들면, 오 분 만
더, 오 분 만 이 땅에서 마지막
사랑을 나누려는 내 눈맞춤,
열어놓은 차창으로 그대 머리칼
휘익- 기분 좋게 나풀거리면
'안녕'하고 속삭이는 내 인사법
그게 바로 나라고 추억해 주소.
- 배찬희 / 나 죽거든.... -
Curtisstigers - John the Revelator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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