삶, 인생
갈대와 늙음 / 최영애
LeeT.
2025. 5. 31. 02:06
딱딱한 빵을 오래 씹으면
단 맛이 느껴지듯
그 날
갈대를 오래 바라보면
이 생에서 느낄 수 없었던
맛이 있을 것 같아
맞은 편 벤치에 앉았습니다
심장에 흐르는 물기조차 말린 채
함께 서걱거리며 바라보다가
갈대와 푸른 하늘이 닿는 즈음에서
황홀한 늙음을 보았습니다
물기 빠져 눈 끝 처져도
저리 늙어가고 싶었습니다
하얀 머리 바람에 날리며
저런 몸짓으로
느릿느릿 늙어가고 싶었습니다
중심 잃지 않고
흔들리는 저 하얀 소요를
습자지 위에 올려
그대로 옮겼다가
훗날 떨리는 손으로
우체통에서 꺼내어
내 늙음 위에 베끼고 싶었습니다
- 최영애 / 갈대와 늙음 -
Luca Turilli's Rhapsody - Luna